■ 커피의 기원
커피에 대한 기원은 여러가지가 있다. 16세기 이전의 커피의 역사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으나 뒷받침할 만한 확실한 문헌이 없지만, 알려져 있는 몇가지 설을 여기 소개한다.
▲ 커피의 기원 (1) : 칼디의 설
월리엄 유커스가 지은 "커피의 모든 것"에 나오는 커피의 발견에 얽힌 전설이다. 아주 오랜 옛날 (7세기경으로 추정) 아프리카의 에티오피아에서 양치기 소년 칼디가 살고 있었다. 어느날 칼디는 자기가 기르고 있는 염소들이 흥분하여 이리저리 뛰어다니더니 그날 밤 잠을 자지 못하는 것을 발견하였다. 그동안 얌전했던 염소들이 갑작스레 흥분을 모습을 본 칼디는그 뒤로 염소들의 행동을 주의깊게 관찰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염소들이 주변에 있는 어떤 나무의 빨간 열매를 따 먹었을 때 이러한 현상이 일어나다는 것을 알 게 되었다. 그 열매를 먹어본 칼디는 자신도 신기하게 기분이 상쾌해짐을 느낄 수 있었다. 칼디는 곧 이러한 사실을 가까운 이슬람 사원 승려에게 알렸고 이에 승려는 여러 가지 실험을 거쳐 그 빨간 열매에 잠을 쫓는 효과가 있음을 발견하였다. 그 뒤로 커피는 곧 여러 사원으로 퍼져나갔고,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고 한다.
▲ 커피의 기원 (2) : 오라르 설
칼디의 전설과는 달리 아라비아의 이슬람교 승려인 셰이크 오마르가 커피를 처음 마신 뒤 전파되었다는 오마르의 발견설이 있다. 이 설에 따르면 1258년 아라비아의 승려 셰이크 오마르가 문책을 당해 아라비아의 오사산으로 추방된 뒤 배고픔에 못이겨 산속을 이리저리 헤매고 다니다가 우연히 한 마리의 새가 빨간 열매를 쪼아먹는 모습을 보고 그 역시 열매를 따 먹었다는 것이다. 여기서 오마르는 이 열매가 피로를 풀고 심신에 활력을 되살아나게 한다는 사실을 알아내었다. 그 위로부터 그는 그 열매를 이용하여 많은 환자들을 구제하는데 성공,결국 그동안의 죄가 풀리고 성자로서 존경받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이 빨간 열매가 바로 커피 열매였던 것이다.
이런 관계로 아랍어의 "kaffa" 즉 힘을 의미하는 단어로 불려지게 되었고 그것이 영국에 전래된 후에는 coffee라 불리게 되었다. 또한, 희랍어 "Kaweh" 에서 힘과 정열에서 비롯된 말도 (아랍어 "kaffa"에서 파생된 말인것 같음 <이글 만든사람이>)있다. 터키에서는 "Kahve" 로 불렸으며, 이후 유럽각지에서 비슷하게 파생되면서 불리워졌다.
(다른 곳에서는 커피(Coffee)뜻하는 아랍어 카와(qahwa)가 원래는 술(wine)이란 뜻으로 쓰였기 때문에 아마도 잘못 해석한 것으로 정의한 곳도 있다)

▲ 커피의 기원 (3) : 역사적 근거
설이 아닌, 역사적 근거를 따진다면, 다음 이야기를 읽으면 될 것이다. 이디오피아 원산의 커피 나무의 열매는 본 고장에서는 음료보다는 곡류나 두류와 같이 분쇄하여 식량으로 사용하면서부터 점차로 커피나무가 아라비아 각 지방으로 분포되어 재배되었다고 한다. 그러던 중 11세기 초 아라비아의 라제스(A.B.Lazes)와 아비세나 (Avicenna) 등의 의학자들이 커피는 위장의 수축을 부드럽게 하여 주는 반면 각성제로 좋은 약이라고 말하여 그후부터 다려 먹던 것이 방향이 있어 하나의 기호 음료로 전환되었으며, 급기야는 페르시아, 아라비아 전역에서 애음되었다. 각국에 대중화의 물결이 일기 시작한 기원은 1517년 터어키의 세림 1세가 이집트에 원정차 방문하였다가 커피의 애음풍습을 터키에 들여오면서부터였으며, 1554년에는 콘스탄티노플에 화려한 카네스 커피 숍(Kanes Coffee shop)이 등장하게 되있다. 이 카네스 커피 숍은 당시 큰 화제를 불러 일으켰으며, 콘스탄티노플을 관광하는 관광객들은 항상 이곳에 들려 이국적인 정취와 기이한 커피 맛에 매료된 나머지 각자 자기의 나라에 그 풍습을 전하였다고 한다. 이렇게 해 커피는 급속도로 세계 각국에 전파되기 시작하였으며 유럽 전역에는 1573년 독일의 의사 라볼프(L.Lavolf)의 기행문에 의해 처음으로 커피가 소개되었다.

■ 커피의 역사
유럽에서부터 시작된 커피문화
사라센 제국이 분열되고 있을 무렵 유럽인들은 십자군을 조직하여 이슬람 세계로 원정을 보낸다. 이때 십자군 병사들은 처음으로 이슬람교 지역에서 자유롭게 커피를 향유하게 되지만 유럽에서는 이교도의 음료라 하여 자유롭게 마실 수 없었다.
그러나 십자군원정 이후 르네상스 시대로 접어들면서 근대정신에 눈을 뜬 유럽인들은 종교적 교리로 인하여 이교도의 음료로 낙인찍힌 커피에 대해 관대 해지게된다. 르네상스라는 문예부흥운동으로 근대정신에 눈뜨게 되었고, 종교교리에 묶여 있던 커피에 대해서도 관대해졌다. 더욱이 당시의 시인, 화가등 커피를 예술의 대상으로 삼기도 했는데, 그야말로 커피는 '시인에게 영감을, 음악가에게 악상을, 철학자에게 진리를, 그리고 정치가에게 평화를 전한다'고 찬미할 정도였다. 그 예는 교황 클레멘트 8세는 커피금지령을 내려달라는 요청을 받고 커피를 먹은 후커피의 맛에 감복하여 커피에 세례를 내린 것. 이것은 커피가 전 유럽으로 퍼지는 데 큰 힘을 발휘하게 되었다.
17세기에 이르러 비로소 기독교들도 마음놓고 커피를 마실수 있게 되자 1645년 베니스에서 처음으로 커피하우스가 생겼다. 이후 1687년에는 군인이었던 게오르그 콜스치스키(Georg Kolschitsky)가 비엔나에 커피하우스를 열었는데 ,그는 비엔나를 점령하고 있던 터키군을 물리친 공로로 터키가 남겨 놓고 간 커피 500포대를 받았던 것이다. 아랍풍습에 익숙했던 그는 커피 추출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그는 터키를 물리친 기념으로 이스람 제국의 상징인 초승달 모양의 케이크를 커피와 함께 손님들에게 내놓기도 했는데, 오늘날 케이크를 곁들여 커피를 마시는 것은 여기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영국에서는 1650년경 에닌젤이라는 이름의 커피하우스가 옥스퍼드에서 문을 열었다. 영국에서의 커피하우스는 스미르나에서 커피맛을 보고 돌아온 한 영국 상인과 그에게 커피를 끓여준 하인 파스카 로제에 의해 알려지게 되었다고 한다. 영국에서의 커피 마시는일이 유행하게 되자 이 상인은 1652년에 콘힐의 외곽지대 에 있는 세인트 미셸 산책로에 오두막을 하나 세우고 그 하인으로 하여금 일반인들에게 커피를 팔게 하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17세기 말 런던에는 무려 2천개 이상의 커피 하우스가 있었고 그 중에는 이따금 꽤 특색있는 커피 하우스들도 있었다. 어떤 커피 하우스안에서는 최신의 해외 소식들을 접할 수 있고 이민 티켓이나 보험 증서, 주식을 살 수도 있었으며 때로는 흑인,이상한 새들 또는 식물의 경매에 입찰을 할 수도 있었다.
또한 변호사, 의사, 아일랜드인, 군인, 노름꾼, 성직자 그리고 작가들을 만날 수 있는 커피 하우스도 있었다. 프랑스의 카페는 그 번창속도가 영국의 커피하우스에 훨씬 미치지 못하였다.최초의 카페는 1643년에 파리에서 문을 열었지만 커피마시기가 유행하기 시작한때는 1669년 르방의 한 대사가 부임하고 난 뒤부터였다고 한다. 파리 사람들은 그 이전에는 커피가 심한 질병과 무력증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의사들의 경고 때문에 이를 멀리하고 있었다.이러한 프랑스에 커피하우스를 보금하는데 공헌한 루이 14세는 1664년에 처음 커피를 마셔본 뒤 1670년경에는 해마다 네덜란드에서 왕실전용 커피를 수입토록 하였다
1715년에는 네덜란드인이 가이아나에 커피나무를 이식함로써 커피나무가 아메리카에 처음 소개되었다. 1718년, 네덜란드인이 가이아나에서 커피를 재배했다. 1720년에는 프랑스 해군제독 클리에가 가져온 커피묘목을 마르티니크 섬에 실었다.1723년 ~ 1852년까지 남미에 커피재배가 확산되었다. 프랑스령 기아나의 총독부인이 화려한 꽂다발 속에 커피묘목을 숨겨 잘생긴 스페인 연대장에게 선물함으로써 그 묘목은 콜롬비아에 뿌리를 내리게 되었고 ,이어 브라질로 퍼져나갔다. 그렇게 브라질과 콜로비아로 보내진 커피는 최상의 재배조건 위에서 잘 자라 두나라를 세계 최대의 커피 생산국으로 만들었다.
한편, 북아메리카에 커피가 전파된 것은 17세기 말로 뉴암스테르담(지금의 뉴욕)의 부유층 사이에서 마시기 시작했다고 한다. 당시만 해도 북미에서는 기호음식으로 차를 마셨는데, 1773년 4월 영국 의회가 차세법을 통과시켜 엄청난 세금을 부과하자 이에 반발한 시민들이 인디언으로 위장, 차를 가득 싣고 보스턴항에 정박중이던 영국 동인도회사의 배를 파괴해 버린 것이다. 미국 독립전쟁의 발단이 된 이 '보스턴 차 사건'이후 북미에서도 차를 대신해 커피가 보편화되었다.
한편, 동양에 처음 들어온 것은 1878년 경 일본에 들어온 것(묘목)이 처음이라고 하며 1888년 일본 동경에 커피점이 생겼다.
1690년~1699년사이에는 네덜란드인이 스리랑카와 인도네시아에 커피나무를 심어 재배에 성공했으며 1740년에는 자바섬에서 필리핀으로 커피가 전파되었다. 1840년에는 영국인들이 인도를 자국에서 소비하는 커피의 공급지로 삼았다.
한국에 커피가 들어온 역사는 1895년 (고종 32년)에 을미사변 (아관파천시)때 러시아 공사가 커피 나무의 열매를 한국에 가져 오면서부터였다. 이때 러시아는 이미 커피가 국내에 많이 전래되어 일반화될 무렵이었다고 한다. 러시아 공사는 가지고 온 커피 열매를 건조하여 잘 으깬 다음 끓인 물을 놓고 맛있게 만든 다음 고종황제에게 진상하여 시음하게 한 것이 최초라고 전하여 진다. 당시 고종은 세자(후에 순종)와 함께 약 1년간 러시아 공사관에 머물면서 커피를 마셨고 덕수궁으로 돌아온 뒤에도 그 맛을 잊지 못해 커피를 찾았다고 한다. 그때부터 커피는 궁중내의 기호 식품으로, 주로 벼슬아치들이 즐겨마셨다고 한다. 바로 숭늉 문화에서 커피 문화로 가는 하나의 선구자 역할 노릇을 했었던 것이다. 그러나 커피를 좋아했던 고종은 그로 인해 독살될 뻔하기도 했다. 1889년 러시아 역관으로 세도를 부리던 김홍륙이 천러파의 몰락으로 관직에 쫓겨나고 또 러시아와의 통상에 거액을 착복한 사건이 들통나 흑산도 유배가 결정되자 앙심을 품었던 것이다. 김홍륙은 덕수궁에서 일하던 두 하수인을 매수, 고종의 생일에 독약을 탄 커피를 마시게 하려다 발각되었다고 한다.
그 후 독일여자 손탁이 러시아 공사관(현, 정동 위치) 근처에 정동구락부라는 커피점을 열었는데 이것이 우리 나라 최초의 다방이다. 커피가 처음으로 판매되게 되었는데 당시 커피 한잔 값이 너무나 비싸 부유한 사람만이 사 마실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러던 중 6.25 동란이 발발하여 미군이 진주하면서 1회용 인스턴트 커피가 등장하여 무질서하게 유출됨으로써 일반화되었다. 그 당시 미군으로부터 유출된 인스턴트 커피는 카페인이 너무 많이 함유되어 있어 과음을 하게 되면 불면증에 걸려 많은 사람들이 고생하였다고 한다. 1970년 우리나라 최초로 인스턴트 커피를 생산하게 되었는데 그 기업이 동서식품이었다.

■ 커피의 수난
커피가 꼭 쉽게 일반인들에게 대중화가 들어온 것은 아니었다. 당시 이 특이한 커피에 대해 과세를 물리거나 커피�을 폐쇄조치함으로서 당시 진보된 지식인들을 박해하기도 했다. 제일 시급한 문제는 이슬람 세력들이 커피를 종자상태로 수출을 금지하고 볶은 (Roasted) 상태로 수출해 종자 확산을 막았다. 외국인들은 커피농장 방문이 금지되었으며 호주머니에 몰래 원두나 묘목을 숨겨 달아나지 못하도록 감시 당했다. 그러나 메카로 가는 순례자들은 원두를 가지고 나오기도 했다.
1616년 마침내 네델란드의 한 상인이 인도의 순례자로 부터 원두를 입수해 그것을 유럽으로 밀반출했다. 이후 70년동안 네델란드는 인도네시아의 플랜테이션에서 커피를 재배했고 커피는 네델란드의 가장인기있는 음료가 되었다.
커피의 생태상 유럽에서는 자라나지 못하는 특성 까닭에 날씨가 비슷한 식민지에서 키울 수 밖에 없었다. 한 예로 프랑스의 노르망디 출신의 끌리외(Gabriel De Clieu)는 루이14세의 정원에서 커피 묘목 몇그루를 구해 자신이 근무하던 아메리카 식민지의 한 곳인 마르티니크 섬으로 향했다. 항해 중 자신에게 할당받은 식수까지 커피나무에 주며 그는 한 그루의 나무를 마르티니크 섬에 옮겨심는데 성공했다. 이 곳에서 무성하게 자란 커피는 프랑스령 기아나로 옮겨져 번성했다.
그러나 유럽의 제국주의와 식민주의 시대때 (19세기경) 인도에서의 최초의 커피가 자란 이후 인도네시아, 필리핀, 말레이지아, 브라질등 커피 벨트(coffee belt)의 여러나라로 자라나기 시작했다. 당시 제국주의 국가들은 식민지에서 나온 커피를 자신의 나라에만 유일하게 혜택을 받았지만, 식민지 국가들은 힘이 없어 그들이 원하는 대로 내버려 둘 수 밖에 없었다. 제 2차 세계 대전 이후 브라질, 콜롬비아인들은 자국내 커피 생산을 극대화하여 넓은 수출로 자국 경제를 활성화시켰다.
■ 다른나라에 있어서의 커피
- 아라비아인들의 하루는 아침기도와 커피로 시작된다. 이들은 아침기도를 마치는 대로 커피를 만들기 시작하는데, 커피를 끓이는 일은 남자들의 몫이다. 먼저 원두를 배전하고 이를 식힌 다음 오목한 절구에 넣어 빻는다. 이어 카더먼 같은 향신료를 섞는다. 보통 설탕은 쓰지 않으며 남자들이 커피를 만드는 동안 여자들은 빵을 굽는다.
- 인도인들은 열대기후에 살기 때문에 뜨거운 커피를 즐겨 마신다. 대개 우유에 뜨거운 커피를 부어 마시며 컵은 금속제가 정식이다. 때로 바나나, 망고스틴, 튀김과자를 함께 먹는다. 커피를 자주 마시는 민족으로 이탈리아인들을 빼놓을 수 없다. 이들은 주로 강하게 볶은 원두를 곱게 분쇄한 커피가루를 사용하여 데미타스(보통 잔의 절반 크기로 보통 잔의 용량이 100~150cc인데 반해 이것은 70~80cc이다)에 담아 그대로 마시거나 설탕을 쳐 마시는가 하면 아침에는 코냑을 넣기도 한다.
- 그리스인은 하루 3회 정도, 아침 오후 3시, 5시경 커피 또는 홍차를 즐겨 마신다. 커피에는 대개 우유를 넣어 마시며 때에 따라 터키 커피를 데미타스 잔에 따라 마시는 습관이 남아 있다. 이들은 보통 커피를 다 마시고 나면 잔을 접시에 엎어 남아 있는 커피가 그리는 모양으로 자신의 앞일을 예측하는커피점을 치기도 한다.
- 러시아 사람들이 마시는 커피는 아주 다양하다. 커피에 크림, 우유를 넣거나 레몬조각, 아이스크림을 넣은 것, 설탕 대신 잼을 넣은 것 등 여러 가지인데 코카서스 지방에서는 커키식 커피를 고수하고 있기도 �. 또 러시아 특유의 커피라 할 수 있는 러시안 커피 (Russian Coffee)가 있는데 , 이는 코코아 가루에 커피를 붓고 설탕을 넣은 것. 이 밖에 사과나 배를 저며 넣고 코냑을 부어 마시기도 한다.
- 한편 체코인들은 대체로 유럽식 커피를 좋아하는데, 이와 다른 음료로 호밀커피가 있다. 이는 커피처럼 호밀알을 볶아 빻고 뜨거운 우유를 부어 마시는 것으로 모닝 커피라 부르기도 한다.
- 에콰도르에는 오후 4시 반경 커피타임을 두고 사람을 초대하는 습관이 있다. 이들은 원두를 갈아 드립식으로 추출하는데, 아침에 하루 동안 마실 커피를 만드는 일이 주부의 일과중 하나이다. 보통 데미타스 잔에 진한 커피를 담고 설탕을 듬뿍 넣어 마신다.
- 브라질의 경우 세계 최대의 생산국답게 하루 평균 10잔 정도 마신다. 강하게 배전한 뒤 곱게 분쇄한 커피가루를 사용, 진하게 추출한 커피가 가장 대중적인데 여기에 우유를 넣지 않고 설탕만 타 데미타스 잔에 따라 마신다. 한편 콜롬비아 살마들이 흔히 마시는 커피는 틴토(tintio)이다. 뜨거운 물에 흑설탕을 넣고 끓여 녹인 다음 불을 끄고 커피가루를 넣어 저은 뒤 뚜껑을 덮는다. 그리고는 가루가 가라앉을 때까지 5분쯤 기다렸다가 위에 뜬 맑은 커피만 따라 마시는 것이다.
- 커피 역사가 비교적 짧은 미국에서는 평균적으로 엷고 담백한 커피가 주를 이룬다. 우리나라에서 흔히 '아메리칸 커피'라고 하는 것이 바로 이 커피, 약하게 배전한 원두를 쓰며 최근에는 배전강도가 높은 원두를 쓰면서 물을 많이 사용, 연하게 추출하기도 한다. 보통 설탕이나 크림을 넣지 않고 큰 잔에 넣어 담아 마신다.

■ 자메이카 커피 블루마운틴 이야기 세계 각지에서 생산되는 수 많은 커피 가운데 최고의 맛과 향기를 자랑하는 커피는 자메이카의'블루마운틴'이다. 설탕과 크림을 넣지 않은 이른바 블랙스타일이 제맛이라는 블루마운틴. 현재 미.일 합작 커피 회사 UCC가 사실상 세계에 독점 공급하고 있다. 최대 생산지는 자메이카 킹스턴에서 동북쪽으로 40km 떨어진 산, 바로 커피 이름이 유래한 마운틴 산 속이다.
블루마운틴의 자연환경은 커피생산에는 최적으로 손꼽힌다. 낮에는 섭씨 30℃를 오르내리고, 밤에는 15℃까지 떨어지는 큰 일교차, 기름진 토양, 표고 800m에서 1200m에 이르는 산의 경사, 항상 산을 감싸고 있는 운무, 이같은 환경 외에도 블루마운틴 커피를 세계적 브랜드로 정착시키는데는 뜻밖의 인물이 숨어 있었다. 제임스 본드의 007영화 원작자로 유명한 영국의 랜 플래밍(Lan Fleming)이 블루마운틴에서 작품활동을 했다는 얘기가 그것이다. 그가 살았던 집은 현재 관광지로 개발돼 있다.
커피는 나무라 볼 수 없지만 대략 2m 정도 크기로 사람 키보다는 약간 높은 정도며 수확기는 10월. 가지끝에 매달리는 작은콘 크기의 빨간 원두를 따면서 전체 과정이 시작된다. 블루마운틴에서 생산되는 커피 중에서도 최고급은 표고 800m에서 880m 사이에서 자라는 커피이다.
현재 블루마운틴 커피 전체 경작지는 2만8천에이커. 연평균 생산규모는 20,000톤 정도. 카브리해 전역의 역사가 그렇듯 자메이카에 커피가 발달한 것은 콜럼버스 때문. 콜럼버스는 신대륙원 주민들이 밤새도록 뭔가를 마시면서 잠도 자지 않고 얘기하는 것을 보게 된다. 커피였던것이다. 콜럼버스는 이 커피를 즉각 유럽에 전파했다. 그로부터 236년이 지난 1728년. 당시 자메이카 총독으로 부임한 영국의 니콜라스 로이경이 아라비카종 커피 씨앗을 남아메리카에서 들여와 블루마운틴에 이식했고, 이 커피는 독특한 맛과 향기 때 문에 최고의 커피로 유럽에 알려졌다.
커피 대국 자메이카의 영예는 1838년 영국 의회가 노예제를 폐지하면서 점차 빛이 바래기 시작했다. 커피 생산에 투입되던 아프리카 노예가 해방되자 커피 생산은 자연히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중 73년 자메이카 정부는 정부 부속 기관으로 커피청을 신설, 엄격한 품질관리를 시작했다. 이에 따라 자메이카는 다시 옛 영예를 되찾아 최대 품질의 커피생산국으로 발돋움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