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컵핑은 커피 콩 표본의 맛과 향의 특성을 체계적으로 평가하는 데 쓰이는 방법이다. 그 과정은 크게 두 단계로 이루어진다. 즉, 먼저 미리 정해진 방식에 따라 커피를 추출한 다음, 일련의 절차에 따라 커피 컵퍼의 미각과 후각에 의해 커피의 맛과 향을 평가하는 것이다. 컵핑은 커피를 구매하거나 배합하는 등 경제적 목적과 밀접한 연관이 있으므로, 컵핑 전문가들은 절차와 기술을 엄격하게 준수한다.
표본 준비
추출 방식은 우려내기이다. 작은 컵에 볶아서 분쇄한 커피를 넣고 거의 끓는 물(화씨 195~205도)을 붓는다. 처음에는 커피 입자가 물위로 떠올라 막을 형성하지만, 뜨거운 물에 서서히 잠기면서 가라앉기 시작한다.
여기에 소요되는 시간은 3~5분이다. 숟가락으로 저어 커피 입자가 완전히 컵 밑바닥으로 가라앉게 한다. 가라앉지 않는 입자는 걷어내서 버린다. 이 추출 방식의 요점은, 커피를 거르거나 커피 입자에서 맛과 향을 내는 성분이 추출되는 것을 막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 컵의 커피와 물의 비율은 커피 7.5그램에 물 150밀리리터이다. 이렇게 할 때 커피의 농도는 1~1.3%이다. 이것은 반 갤런 짜리 추출기에서 물 64액량 온스에 커피 3.2온스, 또는 물 2.5갤런에 커피 1파운드를 쓰는 것과 같다.
이 추출 방식에 쓰이는 커피의 입자 크기는 70~75%가 미국 표준 체 20호를 통과할 정도로 고와야 한다. 커피를 이렇게 곱게 분쇄하는 것은 18~22%의 추출률을 얻기 위해서이다. 시험에 의하면 이것은 커피의 맛과 향을 내는 성분을 모두 추출하는 데 최적 추출률이다.
추출된 커피의 약 99%가 물이므로, 물의 질이 대단히 중요하다. 수용성 무기물이 100~200ppm(part per million) 함유되어 있어야 하는데, 이것은 소매점에서 판매하는 일반 생수의 경도와 같다. 증류수를 쓰면 안 되며, 염소 등 물에 첨가된 화학 물질을 모두 걸러내야 한다. 컵핑은 미각과 후각을 쓰는 것이므로, 물의 질이 매우 중요하다.
감각적 평가
냄새맡기, 소리내어 마시기, 꿀꺽 삼키기 등 컵핑에서 취하는 동작은 일상적인 식생활에서 취하는 동작보다 훨씬 더 과장된 것이다. 이렇게 과장된 동작을 취하는 이유는 커피의 자극성 물질로 되도록 많은 말초 신경을 자극하여 미각과 후각을 극대화하기 위해서이다. 일상 생활에서 이런 행동을 하면 교양 없는 사람으로 간주되겠지만, 컵핑에서는 필수적인 행동이다.
커피콩의 향(fragrance), 추출된 커피의 향(aroma), 맛, 냄새, 뒷맛, 그리고 밀도(body)를 평가하는 컵핑은 여섯 단계로 이루어진다.
1. 커피 콩의 향
컵핑의 첫 번째 단계는 커피 콩의 향을 평가하는 것이다. 표본 7.5그램을 분쇄하여 컵에 넣고, 막 분쇄된 커피 콩에서 이산화탄소가 방출되면서 발생하는 여러 가지 기체의 냄새를 맡는다.
향의 특성은 곧 맛의 특성을 나타낸다. 향긋한 냄새는 새콤한 맛으로, 코를 찌르는 신랄한 냄새는 톡 쏘는 맛으로 이어진다. 향의 강도는 표본의 신선도, 즉 표본을 볶을 때부터 분쇄할 때까지의 시간을 나타낸다.
향은 메틸 메르캅탄 따위 황이 함유된 강휘발성 냄새 물질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런 물질들을 커피 콩 안에 붙잡아 둘 수 있는 방법은 없다.
2. 추출된 커피의 향
두 번째 단계는 추출된 커피의 향을 평가하는 것이다. 막 분쇄된 커피에 끓인 생수 150밀리리터를 붓고, 약 3분 동안 커피 입자가 물에 젖게 한다. 커피 입자가 물위에 떠서 막을 형성한다.
컵핑 숟가락으로 부드럽게 저으면 물의 온도에 의해 여러 가지 기체가 발생하는데, 이 기체들을 코로 길게, 깊이 들이마신다. 이때 맡을 수 있는 냄새는 과일 냄새, 풀 냄새, 견과 냄새 등 다양하다. 컵핑을 반복하다 보면 이런 여러 가지 냄새를 분류하고 구별할 수 있게 된다.
일반적으로, 커피의 향은 커피의 종류에 따라 다르다. 그리고 향의 강도는 커피 콩을 볶을 때부터 분쇄할 때까지의 시간에 좌우된다. 다시 말해서, 커피 콩에 수분과 산소가 얼마나 함유되어 있느냐에 따라 좌우되는 것이다.
3. 맛
컵핑의 세 번째 단계는 막 추출된 커피의 맛을 평가하는 것이다. 컵핑용 숟가락(8~10cc의 액체를 뜰 수 있고 열이 빨리 전도되도록 은도금되어 있는 둥근 수프용 숟가락)으로 추출된 커피를 6~8cc 떠서 입 바로 앞에 대고 쉬-잇 빨아들인다. 이런 식으로 마시면 커피가 혓바닥 골고루 퍼지며, 그에 따라 모든 말초 신경이 단맛, 짠맛, 신맛, 쓴맛 등 네 가지 맛에 즉각 반응한다.
온도는 자극을 느끼는 데 매우 중요한 영향을 끼치므로, 맛을 어디서 느끼느냐가 맛의 특성을 구분하는 데 도움이 된다. 이를테면, 온도는 단맛을 감소시키므로, 새콤한 커피는 처음에는 부드럽게 느껴지지 않고 혀끝이 얼얼한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그러므로 커피를 3~5초 동안 입안에 머금고 맛의 방향과 강도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그래야 커피의 1차적인 맛과 2차적인 맛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4. 냄새
네 번째 단계는 세 번째 단계와 동시에 이루어진다. 추출된 커피가 혓바닥에 고루 퍼지게 하면, 커피에 함유된 액체 상태의 유기 물질들이 증기압의 변화에 따라 기체 상태로 변한다. 그러므로 커피를 강하게 빨아들이면 이 기체들이 콧구멍으로 들어가 냄새를 분석할 수 있게 된다.
맛과 냄새를 동시에 평가하는 이 방식을 쓰면 커피의 독특한 맛과 향을 구분할 수 있다. standard-roast 커피는 황설탕을 만들 때의 냄새가 나고, 다크로스트 커피는 건류(乾�할 때의 냄새가 난다.
5. 뒷맛
커피의 뒷맛을 평가하는 이 다섯 번째 단계는 커피를 몇 초 동안 입안에 머금고 있다가 꿀꺽 삼키면서, 후두를 수축시켜 입천장 뒤쪽에 남아 있는 증기를 콧구멍 속으로 보냄으로써 이루어진다.
뒷맛을 내는 물질은 다양한 맛과 향을 낸다. 초콜릿처럼 달콤한 맛, 모닥불이나 담배 연기 같은 냄새, 정향( ��처럼 혀를 톡 쏘는 향신료 맛, 소나무 수액 맛, 또는 이런 다양한 맛과 향이 합쳐진 것 같은 맛과 향 등.
6. 밀도
이 마지막 단계에서는, 혀로 입천장을 고루 핥으면서 촉감을 느껴 본다. 미끌미끌한 느낌은 커피에 함유된 지방을 나타내고, 끈적거리는 듯한 느낌은 커피에 함유된 섬유질과 단백질을 나타낸다. 이 두 가지 느낌이 바로 커피의 밀도를 이룬다.
커피가 식으면 위에서 말한 3단계에서 5단계까지, 즉 맛과 냄새와 뒷맛을 평가하는 과정을 반복한다. 커피를 식히는 이유는, 온도가 네 가지 기본 맛에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감안하여 보다 정확하게 맛과 향을 평가하기 위해서이다.
컵핑을 할 때에는 적어도 둘 이상의 커피 콩 표본을 가지고 비교하면서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래야 맛과 향의 일관성이나 유사성을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관성을 시험할 때에는 같은 표본으로 3~4컵을 만들어 컵핑하고, 유사성을 시험할 때에는 같은 표본으로 1컵 이상을 만들어 표준 표본과 비교한다. 이렇게 하면 커피 콩마다의 미묘한 맛과 향의 차이를 분석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맛과 향의 특성을 기억해 두었다가 나중에 컵핑할 때 유용한 참고 자료로 쓸 수 있다.
많은 표본을 컵핑할 때에는 삼키지 않은 커피를 내뱉는다. 즉, 다음 표본을 평가하기 위해 입안을 깨끗이 하는 것이다. 경우에 따라 약간의 미지근한 물로 입안을 씻어내기도 한다. 여러 가지 맛과 향을 평가하다 보면 감각이 무디어지게 마련이므로, 컵퍼마다 맛과 향을 정확하게 평가할 수 있는 표본의 수의 한계가 있다.
마지막으로, 커피의 맛과 향의 자극을 기억 속에 저장되어 있는 것들과 비교하면서 분석하는 능력은 마음가짐의 영향을 받는다. 그러므로 컵핑실에는 광경, 소리, 냄새 따위 외부적 방해물이 없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지금 하고 있는 일에만 몰두해야 한다.
커피를 컵핑하는 법을 배울 때에는 특정 커피의 맛과 향을 잘 기록해 두는 것이 좋다. 다양한 맛과 향을 기억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기 때문이다. 다음 페이지에는 커피의 다양한 맛과 향을 기록하는 데 길잡이가 되는 “커피의 여러 가지 맛과 향”이 소개되어 있다. 커피의 맛과 향을 묘사하는 데 쓰이는 모든 용어가 망라되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커피의 맛과 향에 관한 용어를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쓰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커피의 맛과 향 훈련 세트” 또한 커피의 맛과 향을 정확하게 묘사하는 데 도움이 된다. 이를테면, 인스탄트 커피에 주석산 희석액을 첨가하여 와인 맛을 내게 할 수도 있다. 이 훈련 세트가 모든 맛과 향을 재현할 수는 없지만, 기본적인 맛과 향은 거의 다 재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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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이 자료는 SCAA(Specialty Coffee Association of America)의 Coffee Cupper's Handbook에서 빌려 번역한 것입니다.
김용주 님은 《파리대왕》,《뉴에이지 혁명》,《어느 공처가의 세 가지 소원》등을 번역했고, 한국커피문화협회의 미간행 번역물 다수를 번역한 전문 영한?한영 번역가이며, 지금 커피 전문 서적 한 권을 번역하고 있기도 합니다